

새삼스레 되짚는다. 나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맨 처음 잃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제 이름이었다. 선천적인 결연함 때문인지. 내가 나 자신이라는 확신만큼은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 속의 공백이 불러오는 혼란은 감히 무시할 문제가 아니었다.가족, 친구, 명예, 삶, 그 중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처음, 이름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억을 잊은 채 눈을 뜬 이 곳은 낯선 궁전의 모습이었다.
영웅이 사후 도달하는 천국. 이 곳에서는 생전의 고통스러운 일들을 잊고, 영원히 궁전에서 산해진미와 유흥을 즐기며 있어도 좋다고 누군가 말했다. 하늘은 두 편으로 나뉘어 낮과 밤을 그대로 담은 채 멈추었고, 궁전 처마 위는 정확히 그 가운데 석양에 위치하여, 어슴푸레한 여멍과 황혼을 양 지평선에 끼우고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
식탁 위에서 음식이 줄어들 일은 없으며, 이름도 모르는 이와 죽을 때 까지 싸워도 아침에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말마따나 이 곳에선 불편한 일 하나 없었기에 시간의 흐름은 더욱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어느날 나는 불현듯 깊은 사색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생각했다. 이대로 지내도 되는걸까? 기억나지 않지만, 내겐 이뤄야 하는 것이 있었다. 여하튼 그것이 이대로 향락 속에 빠질지언정 해소되지 않을 욕망이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기 위해 오랜 권태를 깨고자 말하길, 궁전의 홀 가운데에 있던 현자의 석상은 저 너머 밤하늘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택의 불길 속에 잠들어 있는 공주를 깨운다면 그대가 찾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